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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개요
서울특별시는 대한민국의 수도로 최대도시이다. 평양시, 경주시, 개성시, 공주시, 전주시, 제주시와 함께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의 고도 중 하나다.
법률상 대한민국 제1의 도시로 규정되어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특별시고, 수장인 서울특별시장은 대한민국 광역자치단체장 중 유일하게 장관급 대우를 받으며 국무회의 참여권 및 발언권이 있다. 서울특별시는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인 부산광역시보다도 인구가 약 3배 더 많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종주도시다.
역사적으로도 백제, 조선, 대한제국의 수도이자 현재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중요성이 높다. 기원전 18년 백제가 현 송파구·강동구 지역에 도읍을 정한 후 492년간 한성백제 시대가 이어졌다. 이후 475년 고구려가 한성을 함락했는데, 북쪽에 기반을 둔 국가인 고구려는 기존 백제의 한성에서 북쪽으로 한강을 건너 현 광진구·성동구·구리시 일대를 거점으로 삼아 고구려의 북한산군 남평양으로 지정했고, 이후 서울특별시는 강북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553년 신라가 서울 지역을 차지하고 신라의 한산주 한양군이 되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약 250년간 개경 이남의 남경이었다. 조선시대에는 510년 동안 조선 및 대한제국의 수도 한성부였고, 이어 70여년간[27]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특별시로서 지위를 차지하는 도시로 한국사에서 도합 1,070여 년간 수도로서 기능을 했고 부수도 기간까지 합치면 1,3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의 고도다.
전통적으로 서울은 강북 지역만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1960년대 서울 대확장을 통해 한강 이남까지 관할구역이 확장되었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영역은 옛 한성부 영역에서 조선 후기의 양천현 전체와 시흥현, 과천현의 상당 지역, 광주유수부와, 양주목의 일부를 추가로 편입한 형태이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인 만큼 평지에 일목요연하게 설립된 계획도시가 아니라 산과 강 등의 자연을 등지고 자연스레 형성된 도시 형태이며, 독특한 특징도 여럿 있다.
지명의 어원
'서울'은 본래 한국어의 순우리말로서 '한 나라의 수도(首都)', 곧 '국도(國都)'를 가리키는 일반명사이다. 영어로 표기하면 'Capital City' 정도가 된다.
따라서 고유명사로서의 쓰임과 별개로 '미국의 서울은 워싱턴 D.C.이다', '영국의 서울은 런던이다', '조선의 서울은 한양이다'로도 쓸 수 있는 것이다. 다만 1946년 지명이 '경성부'에서 '서울시', 다시 '서울특별자유시'로 바뀐지도 벌써 반세기가 넘었고 고유명사 '서울(특별시)'의 용례가 대두되어 일반명사인 '서울'은 일상 회화에서는 점차 쇠퇴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서울'이라고 하면 지명인 '서울특별시'를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고유명사가 된 일반명사의 사례이다.
남한의 기초자치단체, 광역자치단체, 일반구, 행정시 등 시군구 이상 행정구역 중에서 유일한 고유어(순우리말) 지명이기도 하다.
'서울'이라는 어휘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학설이 있다. 국어학계에서는 대개 서울이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徐羅伐)'에서 변형되었다고 본다. 서라벌(徐羅伐)은 역시 고대 한국어의 순우리말을 음역한 것이다. 그때도 한자어 서라벌(徐羅伐)을 지금과 같이 서라벌로 읽었을지 아니면 다르게 읽었을지는 명백하지 않지만, 현대의 발음과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라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참고로 신라 시대에는 서라벌을 서벌(徐伐)로 표기한 기록도 제법 있다. 신라 시대의 서라벌, 서벌이 오랜 세월을 거쳐 조선시대에는 셔ᄫᅳᆯ → 셔울 → 서울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용비어천가》에서는 한자 京에 대응되는 고유어를 '셔ᄫᅳᆯ'로 기록하고 있으며[40], 《삼국유사》에서도 신라 국호 제정 기사에서 “지금 경(京)자의 뜻을 우리말로 서벌(徐伐)이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서라벌'의 정확한 어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학계에서는 서라벌이 '금성(金城)'이라고도 불렸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 명칭이 '쇠(金)'+'벌(野)'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의 이명이 '소부리(所夫里)'인데 이것이 '소벌'의 음차일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이 변하여 서울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만일 '소부리'가 서울의 실제 어원이었다면, 한반도에서 최초로 서울 지역을 수도로 삼았던 백제의 명칭이 돌고 돌아 다시 서울로 돌아가게 된 셈이 된다. 고구려의 지명에서도 현대 한국어 '서울'에 대응되는 어휘가 발견된다고 한다. 옛 예맥계 국가인 맥국(貊國) 등이 존재했던 강원도 북부 및 함경도 일대에서 창고를 수을(首乙)이라고 했는데, 이 단어를 한문으로 '서울 경(京)' 또는 '곳집 경(𢈴)'으로 번역했음을 《삼국사기》 〈지리지〉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조에서는 고구려인들이 고상식 창고를 '부경(桴京)'이라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창고'와 '수도'를 뜻하는 고구려 어휘가 동일했으며, '술'~'수리'의 발음을 지녔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 가설의 경우 상술한 '서라벌' 및 '소부리'와 달리 '서울' 의 '서'에 대응되는 부분만 확인되고 '울(←ᄫᅳᆯ)' 에 대응되는 어휘가 기록되지 않아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고려의 전신인 태봉의 수도였던 철원의 고유어 지명 '쇠벌'이 서울이 되었다는 설도 있는데, 이쪽도 서라벌과 같이 '철원'을 쇠 철(鐵)에 벌 원(原)으로 분석한 것이다. 다만 《삼국사기》에 따르면 삼국통일 이전 철원의 한자 표기는 '鐵原'이 아닌 '鐵圓'이었으며, '모을동비(毛乙冬非)'라는 고유어 지명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이 두 명칭이 같은 지명의 이표기였을 것이라 추정하여 '텰두르비'의 음역이라고 해석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실제로 철(鐵)의 옛 한자음인 '텰'은 한자 모(毛)에 대응되는 고유어 '털'과 유사하며, 둥글다[圓]는 뜻의 중세 한국어는 '두렵다'였으므로 역시 '두르비'와 유사하다. 이를 따른다면 철원은 '쇠벌'보다는 '쇠둥긂'을 뜻하는 지명이 되어 '서울'의 어원과는 무관해지게 된다. 이외에도 고구려의 '졸본', 발해의 '솔빈', 고려의 수도 개성의 옛 이름인 '송악'의 이명 '송도(솔벌)' 역시 어원의 후보로 제기되고 있다. 서라벌에서 '라'의 탈락이 제대로 설명되었지 않다고 보는 경우 본 가설을 비롯해 위에서 설명한 여러 이설들 중 하나를 유력하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다만 앞서 서술했듯 '서벌(徐伐)'이라는 표기 또한 신라 당대에서부터 나타나므로 '라'의 탈락은 이미 신라 대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는 설이 지배적이다.
결국에 어떤 수도를 지칭하는 고유/일반명사가 일반명사 '서울'이 되었고, 다시 '서울특별시'를 지정하면서 고유명사가 되었다는 점은 같다. 원로 배우 오현경이 들은 얘기로는 정도전이 태조 이성계를 모시고 북악산에 올라갔을 때, 그때가 3월이라 주변 산에 모두 눈이 쌓여 있었는데 그 안에 있는 땅이 마치 눈의 울타리 안에 있는것 같다고 해서 '설울'이라고 했다가 서울이 되었다고 한다. 오현경은 서울 출신으로, 적어도 그때까지 그런 전설이 전해져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삼국유사》와 《용비어천가》의 기록 외에도, 수많은 15~16세기 한글 문헌에서는 '셔울'을 마치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처럼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서울이 등장할 리가 없는 불경 언해본 《월인석보(1459)》와 두보의 시집 언해본 《두시언해(1481)》에서도 셔울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나타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미 훨씬 옛날부터 서울을 '한 나라의 수도가 되는 곳'이라는 뜻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서울을 지금처럼 음차하여 '徐蔚(서울)', '徐兀(서올)'이라고 표기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 작성된 '해좌전도'의 경우 '경(京)'이란 낱말로 서울을 지칭했는데, 한국어에서 '상경' 등의 어휘가 아니라 단일 한자로 된 '지명'이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에서 이를 서울이라고 훈독했다고 보기도 한다.
지명 변천사
고대부터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한강을 낀 데다 드넓고 비옥한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삼국시대에는 원래 백제의 수도였으나 치열한 국경 전쟁을 거쳐 고구려, 이후 신라의 땅이 되었다. 세 국가 모두 서울 지역을 가졌을 때 전성기를 맞았을 정도. 고려 시대에는 태조 왕건 가문의 연고지인 개성을 수도로 삼았지만 이후 남경(서울) 천도가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는데 추진 시기와 맞물려 국운이 기울면서 유야무야되었다. 고려에 이어 조선이 개국한 후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서울은 다시 한반도 국가의 수도가 되었고, 조선 왕조는 물론 대한제국까지 500년 동안 한양을 수도로 삼았다.
일제 때 잠시 경성부(京城)로 개칭되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에 망명정부를 꾸렸지만, 명목상 수도는 서울로 두었다. 1946년에 경성부라는 명칭은 공식적으로 '서울'로 개칭되고 1948년 정부수립 이후에 그대로 수도가 되었다. 북한도 1948년 최초의 헌법을 제정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부(首府)는 서울시이다”라고 규정했으며, 1972년 헌법을 개정해 수도를 평양으로 바꿀 때까지 명목상의 수도를 서울이라 했다.
다만 “조선 시대에는 서울을 한양 또는 한성이라고만 불렀고, 일제강점기에는 경성부라 부르다가 해방 후 서울로 불렀다” 라는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한성부 또는 경성부라는 명칭은 공부상의 공식 지역 명칭이었을 뿐이고,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그저 수도이기 때문에 일반명사로서 서울이라 불렸다는 증거는 상당히 많다. 서울이 일반명사에서 점차 고유명사가 되기 시작한 역사는 생각보다 꽤나 길다. 예를 들어 17세기에 나온 하멜 표류기에도 서울은 Sior로 표기되어 있다. 이미 조선시대에 한양이라는 공식 명칭보다 서울이라고 불리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를 다룬 사극의 등장인물들은 서울을 한양이나 경성부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차라리 서울이라고 부르는 것이 고증에 맞는 자연스러운 설정일 수 있다.
일제시대 때 제작된 영화 '반도의 봄'(1942)을 봐도 일본어 자막으로는 경성이라고 하지만, 한국어 대사로는 서울이라고 말한다.#
근세 이후 '서울'이라는 지명을 사용한 역사에 대하여는 역사 문서 참고.
이름을 바꾸고자 한 시도도 있었다. 외솔 최현배는 1955년 “서울은 수도를 뜻하는 보통명사에 불과하므로 서울의 공식 명칭을 그저 서울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라고 생각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서울의 이름을 고치자고 건의했고 이승만도 생각 끝에 이름 공모를 했다. 그런데 이때 아첨꾼들이 이승만의 아호인 “'우남
'(雩南)“을 서울의 새 이름으로 삼자고 주장한 것. 물론,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이름을 따온 워싱턴 D.C.의 사례를 들어서 제안한 것이었으나, 이를 들은 외솔이 장난치냐면서 길길이 날뛴데다가, 이승만 본인조차도 "내가 봐도 우남은 아닌거 같다." 라고 생각하여 거부했고, 직접 '한도(韓都, 한국의 수도)
'라는 이름을 대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1956년 서울시의회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당선되면서 이 계획은 유야무야되면서 서울은 그저 서울이란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